[기계신문] 자성은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모터, 발전기와 같은 기계적 장치부터 하드디스크, 강자성 메모리와 같은 전자 장치에 이르기까지 여러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기존 자성을 만드는 재료는 값비싼 희토류 자석이라, 이를 대신할 강력한 영구자석을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다.

자석이 갖는 물리적 특징을 이용한 컴퓨터 기억장치인 ‘자성 메모리(MRAM)’는 전원을 꺼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고, 처리 속도도 빨라 차세대 메모리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이 장치의 효율을 더 높이는 데 실마리가 될 연구결과가 나왔다.

UNIST 자연과학부 박노정 교수팀은 인천대 김정우 교수팀, KIST 김경환 선임연구원과 공동으로 수억 분의 일 미터(m)의 얇은 두께를 갖는 자성체의 ‘자기이방성’(Magnetic Anisotropy)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방법을 제시했다.

‘자기이방성’은 자성체 결정(結晶)의 축 방향에 따라 자성을 띠는 정도가 달라지는 성질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 성질을 ‘온오프 스위치(on-off switch)’처럼 사용해 에너지 소모를 줄이면서 정보를 더 빨리 안전하게 저장할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물질의 자성은 ‘스핀(Spin)’이라는 전자 회전운동에서 비롯된다. 스핀은 N-S극을 갖는 아주 작은 ‘자석 알갱이’로, 자기장을 가해 그 방향을 정렬할 수 있다. 이때 물질이 자성을 띠며 이를 ‘자화(磁化)’라 한다.

자성 메모리는 바로 이 ‘자화 방향’을 이용해 정보를 저장하고 읽는다. 하지만 자기장으로 자화를 조절하면 전력 소모가 많고 발열이 생겨 메모리 소자의 집적도를 높이기는 어렵다.

이번 연구에서는 자기장이 아닌 빛과 전기장을 이용해 자화 방향을 조절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이차원 물질인 요오드화크롬(CrI₃)에 빛과 전기장을 가하면 이 물질의 자기이방성 크기를 제어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 (좌측) 다른 이차원 물질인 그래핀과 접합하고 외부 전기장을 쪼여 연속적이고 되돌릴 수 있는 자성의 조절이 가능하다. (가운데) 자성의 방향이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선형 그래프로 보여준다. (우측) 외부 빛(전기장)을 통해 들뜬 전자 상태를 만들면 자성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자성체는 자기이방성 크기에 따라 자화 방향이 달라지므로 자기장 없이도 자화 조절이 가능하다. 이 경우 에너지 소모는 줄이면서 정보를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자성체의 자기이방성이 크면 스핀이 한쪽으로 정렬되는 성질이 강하다. 그 덕분에 입력된 정보가 안정적으로 저장되지만, 새 정보를 입력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 소모는 크다.

이런 ‘딜레마’는 자가이방성을 조절해 극복할 수 있다. 정보를 입력할 때는 자가이방성 크기를 낮추고, 정보를 보관할 때는 자가이방성 크기를 높이는 것이다.

이렇게 조절하면 적은 에너지로 더 빠르게 효과적인 정보의 입력과 저장이 가능해진다. 연구팀은 이론계산을 통해 빛과 전기장을 이용해 원자 수준으로 얇은 자성체의 자기이방성을 아예 없애거나 5배까지 키울 수 있음을 밝혔다.

또 요오드화크롬의 자기이방성을 조절해 수직 방향으로 자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강화할 수도 있었다. 수직 자화가 수평 자화보다 정보저장밀도가 높고 스핀 방향을 바꾸는 에너지 소모가 적으므로, 이번 발견은 향후 자성 메모리 개발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박노정 교수는 “빛과 같은 외부 자극이 있는 상태에서 스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시간의존적 범밀도함수이론’을 활용했다”며 “이번 연구결과는 ‘고효율 자성 소자’ 구현에 필수적으로 여겨졌던 ‘자기이방성’을 빛과 전기장으로 매우 빠르게 제어할 수 있음을 보였다”고 연구 의미를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는 매우 작은 두께를 가지는 초소형 자석을 초고속으로 제어할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현존하는 메모리를 대체할 고밀도 자기 정보 소자의 구현을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자기 정보 소자는 기존의 RAM과는 달리 전력을 공급하지 않아도 정보가 유지되므로, 기존보다 훨씬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 고효율 소자가 될 전망이다.

또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자성체의 자기적 성질을 계산할 수 있는 이론적인 방법을 고안함으로써 향후 관련 연구 분야의 진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이뤄진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2월 12일자로 출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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