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흑린에서 ‘유사스핀 반도체’를 발견했다. 유사스핀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에 비해 더 적은 전력소모로 더 우수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기계신문] 반도체 기술은 응집물질물리학이라는 기초과학 지식에 뿌리를 두고 탄생하여 지난 70년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최근 소형화 및 고성능화의 근본적 한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응집물질물리학 기초연구에 요구되는 시대적 과업이 있다면,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소재 및 소자 기술을 창안하는 것이다.

오늘날 반도체 기술은 전자의 기본 성질인 ‘전하’와 ‘스핀’에 의존해 왔다. 예를 들어, 전기장으로 전하의 흐름을 제어하여 전자소자를 만들거나, 자기장으로 스핀의 방향을 제어하여 정보를 저장하거나, 신개념 전자소자인 스핀트로닉스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물질 중 일부는 구성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이 경우 전자의 유사스핀이라는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게 된다. 유사스핀은 두 개의 부분 격자를 갖는 물질에만 나타나는 전자의 새로운 성질로, 전자의 스핀과 유사한 성질을 갖기 때문에 유사스핀이라 부른다.

만약 유사스핀을 한 방향으로 정렬시키거나 그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면,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소자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지금까지 그러한 물질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김근수 교수 연구팀이 흑린에서 ‘유사스핀 반도체’를 발견했다. 유사스핀 반도체는 기존 반도체에 비해 더 적은 전력소모로 더 우수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 유사스핀 반도체가 발견된 흑린의 결정 구조. 구형체는 모두 원자번호 15번 인(P) 원자를, 막대는 원자간 결합을 나타내며, 주름진 벌집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주름진 벌집 구조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분하는 두 개의 부분 격자로 구성되어 있기에 전자의 유사스핀이란 새로운 성질이 나타난다.

흑린(black phosphorus)은 빛을 내는 신비한 물질로 처음 발견된 원자번호 15번 인(P) 원자가 주름진 벌집 모양으로 배열된 물질로, 성냥머리에 사용하는 적린(red phosphorus), 폭약에 사용하는 백린(white phosphorus)과 달리 매우 안정적인 물질이다.

연구팀 물질의 구성 원자가 주름진 벌집 모양으로 배열될 경우 유사 스핀이 한 방향으로 정렬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이러한 양자 상태를 ‘유사스핀 반도체’라 명명하였다.

인(P) 원자로 만들어진 검은 빛깔의 신소재 흑린은 구성 원자가 주름진 벌집 모양의 배열된 구조를 갖고 있다. 흑린의 유사스핀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편광된 빛과 각분해광전자분광을 바탕으로 실험 기법을 고안, 활용하였다.

그 결과, 95% 이상 한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유사스핀 반도체를 발견한 것이다. 특히 흑린의 유사스핀 정렬현상은 상온에서 안정적이고, 두께와 무관하게 나타나기에 더욱 활용성이 높다.

▲ 유사스핀 정렬과 방향 제어를 이용한 반도체 소자. 회색 동그라미는 인(P) 원자를 나타내며 주름진 벌집 모양으로 배열되어 있다. 바탕에 흰색과 검은색은 양극과 음극으로 대전된 영역을, 붉은색과 푸른색 화살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정렬된 유사스핀을 나타낸다. 두 영역에서 유사스핀의 상대적인 방향에 따라 저항이 달라지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정보 전달과 저장이 가능하다.

유사스핀 반도체의 발견은 유사스핀의 방향을 제어하여 유사스핀 거대자기저항 효과를 탐색하고, ‘유사스핀트로닉스’를 개발하는 등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때 거대자기저항효과는 전자의 스핀 정렬 방향에 따라 높은 자기저항비가 나타나는 현상으로 하드디스크 등에 활용된다. 이 발견에 2007년 노벨물리학상이 수여되었다.

김근수 교수는 “유사스핀 반도체는 자성 반도체의 유사스핀 버전”이라며 “자성 반도체의 발견이 스핀트로닉스 분야를 개척한 사례에 비춰볼 때 유사스핀 반도체의 발견은 ‘유사스핀트로닉스’라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의 신생 분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 선도연구센터, 해외대형연구시설활용지원)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의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지(Nature Materials)’에 2월 4일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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