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신문] 폐목재 등에 많이 포함된 ‘리그닌(Lignin)’은 식물 세포벽의 구성 성분으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유기 고분자 중 셀룰로오스 다음으로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향균성과 항산화성, 자외선 차단 능력, 접착력을 가지기 때문에 차세대 바이오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리그닌 분자 간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일은 이 물질을 원하는 상업 분야에 응용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다. 특히 접착제와 결합제(binder)로 쓰려면 다른 혼합물과 맞닿는 계면에서 상호 작용하는 힘을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리그닌이 어떠한 분자 간 상호작용을 하는지 알아내는 적절한 실험적 시도가 부족했으며, 지금까지는 대부분 경험적으로 설계하는 것에 의존해왔다.

최근 리그닌의 상업적인 응용에 최적화된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동욱 교수 연구팀이 ‘표면 힘 측정기(Surface forces apparatus, SFA)’를 사용해 리그닌과 소수성 표면 간의 상호작용 힘을 측정해 정량화했다. 리그닌을 다른 물질과 섞어서 유용한 물질로 만들 때, 경험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정량적 지표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리그닌은 목재의 30~40%를 차지하는 고분자 물질로, 바이오 연료나 종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많이 나오며, 연간 생산량이 약 5000만 톤에 이르지만 대부분 폐기되거나 단순한 땔감으로 사용됐다.

최근에는 리그닌의 환경적·경제적 가치에 주목해 바이오 연료나 바이오 플라스틱, 분산제, 접착제 등의 재료로 제안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 산업에 쓰인 비중은 2014년 기준 2%에 그친다.

▲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동욱 교수 연구팀 송유정 연구원이 근거리 상호작용 힘을 측정하는 장비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다.

송유정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연구원은 “리그닌은 분자구조가 불규칙하고 응집력이 강해 다른 물질과 섞이지 않아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다”며 “리그닌을 고부가가치 생성물로 만들려면 리그닌 분자 간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정량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동욱 교수 연구팀은 아주 가까운 거리 간의 힘을 측정하는 장비(SFA)를 이용해, 수용액에 있는 리그닌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힘을 측정했다. 그 결과 리그닌의 응집력에는 물을 싫어하는 물질끼리 뭉치려는 힘, 즉 ‘소수성 상호작용’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

또 리그닌이 포함된 수용액에 전하를 띄는 ‘염’을 넣어주면, 리그닌의 응집력을 조절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염이 리그닌 분자 표면에 달라붙으면서 리그닌 분자끼리 뭉치려는 힘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염의 농도를 통해 리그닌의 응집력을 정량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 리그닌 상호작용 힘 측정 결과. a) 식물 2차 세포벽 도식도. b) SFA 실험 도식도로 리그닌 필름 간의 상호작용 힘을 측정했다. c) 리그닌 표면 위 농도에 따른 염 이온 흡착 메커니즘. d) 리그닌 분자 간 상호작용 이론 분석. e) 표면에 따른 리그닌 접착력 비교

연구팀은 이 원리를 이용해 ‘활성탄’의 강도를 높이는 데도 성공했다. 활성탄은 각종 석유화학공정에서 액상에 포함된 독성물질을 흡착해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빠른 유속 때문에 활성탄 입자가 풀어질 수 있는데, 이를 ‘리그닌-활성탄 복합체’로 해결했다.

리그닌과 활성탄은 모두 물을 싫어하는 성질이 있어, 수용액에서 서로 강하게 결합했고 복합체가 더욱 단단해진 것이다. 연구팀은 복합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염의 농도를 조절해 다양한 강도를 구현하고 이를 정량화했다.

이동욱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산업폐기물로 여겨지던 리그닌의 분자적 상호작용 원리를 분석하고, 리그닌의 상업적 활용에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다”며 “정량적 연구결과를 이용하면 리그닌을 각종 석유화학산업과 바이오메디컬 분야에서 고부가가치 소재로 활용하는 게 좀 더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 리그닌-활성탄 복합체의 압축 강도 실험. a) 압축 강도 모식도 및 샘플 모습. b) 대표적인 압축 응력-변형률 선도. c) 리그닌 함량에 따른 복합체 압축 강도 비교. d) 염 농도에 따른 복합체 압축 강도 경향. 염 농도에 따라 강도가 감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생체 분자 간 상호작용을 정량화하는 실험법과 리그닌의 분자 상호작용 메커니즘의 정량적 및 정성적 정보를 제공했다. 이로써 리그닌 기반의 다목적 플랫폼의 방향성과 활용도를 제안할 수 있다.

특히, 연구에 사용된 리그닌은 수용액에서 쉽게 분산되면서 강한 소수성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활성탄뿐만 아니라 다른 소수성 물질과 복합체를 형성할 때 분산제 역할과 결합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이번에 얻은 결과는 일반 공정에서 사용되는 독성이 강한 유기 용액과 합성 결합제를 사용할 필요 없이 친환경적인 수용성 용매와 리그닌을 사용해 버려지는 리그닌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면서 환경 문제도 해결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리그닌 기반 응용 분야의 기본 데이터베이스로 사용돼 향후 리그닌 기반 복합체의 성능을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과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지원으로 이뤄졌으며,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에서 발간하는 ‘ACS Sustainable Chemistry&Engineering’ 12월 2일자로 공개됐다.

▲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동욱 교수 연구팀(좌측 두 번째 이동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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