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조절로 수면장애 해결 가능성 열려

[기계신문] 수면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들의 삶에 필수적인 생리현상이다. 하지만 수면을 조절하는 분자·신경생물학적인 작용원리가 무엇이며, 수면의 생리학적 기능들이 어떻게 수행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수면 행동을 제어하는 두 가지 조절인자로 1) 24시간 생체리듬을 만드는 일주기성 생체시계(circadian clock)와 2) 매일 일정한 수준의 수면 욕구를 해소하도록 조절하는 항상성 수면 작용이 제시되어 있다. 또 이러한 수면조절 인자의 작용은 다양한 생리 환경적인 요소에 의해 유연하게 재구성되어 동물의 수면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점이 실험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생명과학부 임정훈 교수 연구팀은 동물성 단백질에 많이 포함돼 있는 필수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인 ‘트레오닌(threonine)’의 섭취가 수면을 유도하는 현상과 그 신경생물학적 작용 원리를 밝혀냈다. 아미노산 식이조절로 수면장애를 치료할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잠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에게 필수적인 생리현상으로 여러 가지 신체적, 환경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음식을 먹은 뒤 졸음이 오는 식곤증이나, 배가 고프면 잠이 잘 오지 않는 현상 등이 좋은 예이다.

▲ (위) 20가지 아미노산을 각각 섭취한 초파리에서 하루 수면시간(sleep amount)과 깨어있는 상태에서 잠들 때까지 걸린 시간(sleep latency)을 나타내는 그래프 (아래) 초파리의 수면 시간을 24시간 기준으로 나타낸 그래프

연구팀은 형질전환 초파리의 수면 행동을 이용해 특정한 음식물의 섭취에 의한 수면 조절의 가능성을 검증했다. 이를 위해 20가지 아미노산을 각각 섭취한 초파리의 수면 변화를 분석해, ‘트레오닌’이 수면을 유도하는 특이적인 아미노산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트레오닌을 섭취한 초파리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잠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았고, 트레오닌을 섭취하지 않은 초파리에 비해 오랫동안 수면을 유지한 것이다.

▲ (왼쪽) 형질전환 초파리의 뇌를 촬영한 사진이다. 형광색으로 빛나는 부분은 뇌 신경세포에서 대사성 가바의 신호전달을 측정할 수 있는 단백질이 발현된 모습 (오른쪽) 신경세포 내 대사성 가바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인 cAMP의 양 변화를 형광표지 단백질의 신호로 변환해 측정할 수 있는 실험 원리를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트레오닌이 뇌 신경세포의 신호전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타난다는 내용도 이번 연구로 밝혀졌다. 트레오닌을 많이 섭취하면 신경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가바 (Gamma-AminoButyric Acid)’의 양이 줄고, 수면을 촉진하는 핵심 뇌 부위의 대사성 가바 수용기(metabotropic GABA receptor)를 통한 신호가 약해진다. 그 결과 빨리 잠들고 오래 자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기윤희 UNIST 생명과학부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잠을 자면 기억력이 좋아지는데,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 초파리에게 트레오닌을 먹여 수면 시간을 늘려주었을 때 기억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트레오닌 섭취에 의한 수면이 단순히 동물을 기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생리학적인 수면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 (위) 초파리의 단기 기억력을 측정하는 실험법 (아래) 정상 초파리(control)의 경우 트레오닌 섭취가 기억력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억장애가 있는 초파리(dumb2)에게 트레오닌을 먹여 수면의 양을 늘리게 되면 기억력이 향상된다. 또 카페인을 함께 먹여 수면을 억제하면 트레오닌에 의한 기억력 향상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

연구팀은 다른 한 편으로 신경세포에서 트레오닌을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이 억제된 형질전환 초파리를 제작했다. 이러한 초파리는 트레오닌을 음식물로 섭취하지 않아도 뇌 속 트레오닌의 양이 증가하는데, 이때에도 수면촉진 효과가 확인됐다. 뇌 속에 트레오닌이 많아지면 수면이 촉진된다는 것이 이중으로 검증된 것이다.

이에 앞서 연구팀은 KAIST 생명과학과 최준호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세린(serine)이라는 아미노산의 수면 억제 현상을 규명해 2018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바 있다. 배가 고플 경우 뇌에서 아미노산 세린의 합성이 증가하며, 이에 따라 아세틸콜린을 통한 신경 신호전달 경로가 활성화되어 수면을 억제한다는 걸 밝힌 것이다.

▲ (왼쪽) 배가 고프면 뇌에서 아미노산 세린을 합성하는 효소의 양이 증가해 많은 양의 세린이 축적된다. 이러한 생화학적 신호는 아세틸콜린을 통한 신경 신호전달을 통해 수면을 억제한다. (오른쪽) 아미노산 트레오닌을 섭취하거나 신경세포 내 트레오닌 분해 효소의 작용을 저해하면 뇌 속의 트레오닌이 축적된다.

임정훈 교수는 “수면의 새로운 조절 인자로서 뇌 신경세포 내 아미노산 대사 작용의 중요성을 밝힌 연구”라며 “중추신경에 인위적으로 작용해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수면장애 치료제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면장애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로 뇌 신경세포 내 아미노산 대사경로의 생화학적 효소로 작용하는 유전자들이 고차원적인 뇌 활동 가운데 하나인 수면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수면조절 원리의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를 근거로 수면장애 개선을 위한 새로운 치료기술 개발을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접근법을 고안할 수 있게 됐다. 또 뇌 기능을 조절하는 새로운 아미노산으로써 트레오닌 분자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안함에 따라 관련 뇌 연구 분야를 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수행은 서경배과학재단의 신진과학자 연구지원 프로그램, 한국연구재단의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과 X-프로젝트의 지원으로 이뤄졌으며,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 7월 17일자로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