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량용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부족이 잇단 자연재해와 사고로 장기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키고 안정적인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계신문]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30일 발표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방안’ 보고서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부족이 잇단 자연재해와 사고로 장기화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차세대 차량용 반도체 산업을 성장시키고 안정적인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유행에 따른 완성차·부품 기업들의 자동차 판매수요 예측 실패와 IT기기, 서버 등 타 산업 반도체 수요 급증이 맞물리면서 작년 말부터 차량용 반도체의 글로벌 공급부족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 지진, 미국 텍사스 한파 등 자연재해로 세계 반도체 공장 일부가 가동을 멈추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감산은 올 3분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사태는 단순히 단기에 해소될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주도권 경쟁이 달린 문제로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전장화 및 자동화로 자동차가 점차 ‘바퀴 달린 IT기기’로 변모함에 따라 차량용 반도체가 자동차 산업의 핵심부품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규모는 380억 달러(추정)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9.6%를 차지하고 있으며, 향후 타 산업용 반도체 대비 빠르게 성장해 2024년 6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NXP(네덜란드), 인피니언(독일), 르네사스(일본) 등 3대 기업을 중심으로 매출 상위 10개 기업이 세계 차량용 반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 주요국 세계시장 점유율(%) 비교 : 차량용 반도체 vs. 자동차 생산 및 수출(2019년)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3가지 트렌드(전장화‧연결성 심화‧자동화)로 인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첫 번째, 전장화 트렌드는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는 물론 차량 내 활용범위를 대폭 늘리는 요인이다. ADAS(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자율주행, 전기 파워트레인,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 부품군이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 확대를 주도할 전망이다.

한편 전장화의 확대는 애플,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모빌리티 시장에 진출하는 기회요인으로도 작용하면서, 산업의 밸류체인을 전략적 협업과 플랫폼 경쟁이 공존하는 쌍방향 구조로 재편시키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전장부품, 완성차 기업들은 기존 하드웨어 부문의 비교우위를 공고히하는 가운데 소프트웨어 부문의 역량을 확대함으로써 이러한 변화에 대응 중이다.

두 번째 트렌드인 차량 내/간 연결성 심화로 차량의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이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반도체를 비롯한 차량의 전기/전자(E/E) 아키텍처는 단일화·통합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복잡한 컴퓨팅 작업과 복합 기능 수행에 유리한 통합형 반도체 SoC(System On a Chip)의 활용이 확대되고 있으며, E/E 아키텍처 또한 분산형 구조에서 통합형 구조로 발전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중앙에서 한꺼번에 처리해야하는 자율주행 기술을 뒷받침할 전망이다.

세 번째, 자동화 트렌드로 인해 자율주행용 AI 반도체가 각광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NPU, 뉴로모픽 반도체 등 차량 자체에서 AI 연산이 가능한 추론용 AI 반도체의 빠른 성장이 예상된다.

엔비디아, 모빌아이(인텔) 등이 AI 반도체 기반의 자율주행 칩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기존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은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 및 V2X에 활용되는 고성능 반도체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SoC, 고성능 MCU 등 첨단공정이 필요한 반도체는 대체로 설계만 하고 생산은 대만 TSMC 등 파운드리에 위탁 중이다.

▲ 자율주행용 반도체의 글로벌 수급 동향

현재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규모는 9.4억 달러로 우리가 보유한 자동차 생산역량과 비교해 지나치게 작다.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인 미국, 일본, 독일은 각각 텍사스인스트루먼트(미국), 르네사스(일본), 인피니언(독일) 등 세계적인 기업을 보유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규모가 크다(미국 130억 달러, 일본 93억 달러, 독일 72억 달러).

이들은 차량용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자동차 생산 및 수출의 점유율보다도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차량용 반도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3%로, 자동차 생산량(4.3%) 및 수출액(4.6%)의 점유율보다 낮아 이들과 대비된다.

또한 국내 반도체 제조공정은 12인치 웨이퍼의 가전‧IT기기용 첨단 공정 위주(82.9% 비중)이므로, 8인치 웨이퍼 및 30nm 이상의 구형 공정을 주로 활용하는 차량용 반도체를 단기간 내 증산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해외의존도(95% 이상)가 높고 생산 품목이 다소 제한적(인포테인먼트, 네트워킹 반도체 등)인 것도 이러한 구조적인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 한국의 차량용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순위 및 매출 현황(백만 달러, %)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 7위 규모의 자동차 산업(반도체 수요처)과 세계 시장의 18.4%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반도체 공급처)을 보유하고 있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성장잠재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

소수 중소기업‧스타트업 위주의 팹리스 부문의 규모와 설계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세계 2위 규모의 파운드리 역량을 고부가가치 차량용 반도체 품목의 생산에 전략적으로 발휘한다면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투자와 기술 개발이 활발해지는 것도 고무적이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의 매출은 2015년 이후 연평균 25.2%씩 성장하며 여타 반도체 대비 2~3배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고, 자율주행용 AI 반도체 개발이나 인포테인먼트용 반도체 수출 확대 등의 성과도 눈에 띈다.

▲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요약)

보고서는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트렌드가 차량 내 전기·전자부품 및 소프트웨어의 확대, 차량 연결 및 통신 네트워크 고도화, 자율주행 등으로 옮겨가면서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부가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기간산업인 자동차 산업의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강점을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기초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보고서는 “우선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및 자율주행, 차량 이용자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포테인먼트 기능 등에 활용되는 고성능·고부가가치 반도체의 생산역량 확보와 AI 반도체, 전력 반도체 등 산업 포트폴리오의 다각화가 필요하다”면서 “국내외 기술 협력,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기술환경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무역협회 이준명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7위 규모의 자동차 산업과 세계 시장의 18.4%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보유한 국가로 차량용 반도체의 안정적인 수요처와 잠재적인 공급처가 함께 존재해 그만큼 성장 잠재력도 뛰어나다”면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통해 공급망을 내재화하면서도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이상기후, 화재, 지진 등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인한 공급부족 사태에도 대비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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