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유럽이 역내 이차전지 공급망 구축을 서두르는 가운데, 글로벌 2위 수준의 생산역량을 갖춘 우리 기업들이 이를 기회로 삼아 배터리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계신문] 배터리 산업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분야다. 기후변화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가장 빠르게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은 탄소 배출의 약 1/5을 차지하는 육상 교통·운송 분야이다. 그 중에서도 전기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은 배터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휴대용 소형가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 UAM 등 차세대 모빌리티와 로보틱스의 확산에도 핵심역할을 하기에 주목 받고 있는 품목이다.

2020년 자동차 판매는 전년 대비 15% 감소했으나, 전기차 판매량은 41% 증가했다. 전기차 판매량은 2016년부터 연평균 40.2%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전기차용 배터리의 수요도 2030년까지 연평균 19.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8일 발표한 ‘2차전지 공급망 변화에 따른 기회와 도전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미국, 유럽 등 주요 전기차 생산국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완성 전기차 개발에 효율적으로 집중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전기차용 배터리는 해외에서 조달해왔다.

이 과정에서 세계 배터리 산업 공급망은 한국, 중국, 일본 3국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2020년 전기차 탑재량 기준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37.5%, 한국 34.7%, 일본 19.9%로 한중일 3국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 배터리 4대 소재 생산국별 비중(2020)

그러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배터리 원자재 채굴 및 가공에서 소재 가공, 셀·모듈·팩까지 모든 가치사슬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지위가 날로 공고해지면서, 미국, 유럽 등이 배터리를 분업화한 데서 얻는 부가가치가 감소하자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이와 동시에 코로나19로 배터리 GVC의 문제가 전기차 전후방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치자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배터리, 반도체 등 산업 핵심품목을 자국내(역내) 생산하도록 공급망 재편에 나선 것이다.

미국의 배터리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3.4%(한국 19.5%, 일본 13.2%, 2020년 기준)에 이른다. 최근 미 행정부는 2030년 신차 판매의 약 절반을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발표했으나, 미국계 기업의 배터리 셀 생산량은 미미한 상황이다.

배터리 셀뿐만 아니라 배터리 소재의 자체 생산도 적은 미국은 지난 6월 수요촉진, 원자재 공급강화, 국내생산, 인력과 기술투자 등의 내용을 담은 배터리 공급망 검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 주요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공급업체의 협력관계 현황

이러한 사정은 EU도 다르지 않다. EU의 역내 배터리 생산역량은 글로벌 생산역량의 6.2%에 불과하고, 수입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7%로 가장 많다(한국 10.7%, 2020년 기준).

EU는 2025년까지 배터리 자급률 100%를 목표로 삼고, 2018년 유럽 배터리 전략행동계획(Strategic Action Plan on Batteries)을 수립한데 이어, 최근에는 배터리 혁신사업에 29억 유로의 자금을 지원하고, 90억 유로의 민간 투지를 유치하는 사업을 확정했다.

한국의 배터리 수출은 2012년 20.7억 달러에서 2020년 48.8억 달러로 2배 이상 성장했다. 이러한 안정적인 셀 제조능력을 바탕으로 소위 배터리 4대 소재라고 불리우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핵심소재 생산에서 1위인 중국에 이어 2위 자리를 놓고 일본과 경쟁하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한, 중, 일 3국이 주도해왔다. 그러나 배터리의 중요성에 비해 지나친 대외의존도를 우려한 주요 선진국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따라 시장 판도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 국내 배터리 공급망

보고서는 “원료를 제외하고 소재부터 셀, 팩 제조에 이르는 일관된 생산체계를 자국 내에 구축한다는 선진국의 공급망 재편 계획은 우리 기업에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미국, EU 등으로의 현지진출 확대는 대규모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받아 해외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소재업체들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현지의 다양한 수요기업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도 모색할 수 있다.

다만, 공급망 재편은 우리 배터리 산업이 풀어야 할 과제도 제시하고 있다. 해외투자가 확대될 경우 국내 배터리 생산 및 직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수요의 증가속도가 공급보다 빨라 국내생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이를 보완할 수요산업과 대체시장이 필요하다.

국내의 차세대 모빌리티와 로보틱스 산업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자동차 시장규모가 큰 인도, 브라질,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신흥시장 진출을 서둘러야 한다. 배터리 생산 증가에 따른 원자재 가격 대응 노력도 필요하다. 경쟁심화와 기술발달로 배터리 단가는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은 불가피하다.

▲ 배터리 공급망 재편의 원인과 배경, 기회와 도전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선 확보는 또 다른 숙제다. 배터리 안전에 대한 기술혁신과 인식제고 노력도 수반되어야 한다. 끝으로 향후 폐배터리의 분리수거와 재활용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과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리 기업이 갖게 될 기회이자 도전과제라 할 것이다.

정부는 2030 이차전지(배터리) 산업 발전전략을 지난 7월 발표했다. 대규모 투자로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생태계를 조성하는 동시에, 재활용 활성화 및 수요기반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압도적인 시장규모를 가진 미국·EU의 역내 공급망 구축,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물량공세, 전고체 배터리와 같은 차세대 기술로 반전을 노리는 일본의 위협 등우리 배터리 산업은 많은 도전과 기회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 조성대 연구위원은 “19세기까지는 황금(골드 러시), 20세기는 석유로 대표되는 에너지 자원(오일 러시)을 쫓는 시대였다면, 기후변화와 포스트 팬데믹이 화두가 된 21세기는 유무형 자원을 놓고 데이터 러시와 배터리 러시가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규모의 경제로 압도해야 하는 배터리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국가 간 우호관계 형성과 완성차-배터리 기업 간 파트너쉽을 다지는 노력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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